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주 화약 (문단 편집) == 배경 == 황토현 전투와 [[장성 황룡촌 전투]]에서 관군을 격파한 동학 농민군은 마침내 [[전주성]]에 입성했다. 이에 놀란 조선 조정은 동학군을 진압하기 위해 [[청나라]]에 원병을 요청하고 이에 따라 청군이 [[아산만]]에 상륙하기에 이르자, 한편 조선의 상황을 예의주시 하던 일본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조선에서의 영향력을 늘리기 위해 [[톈진 조약]]에 의거, [[제물포]](현재의 인천)에 병력을 진주시킨다.[* 아산만에 진주한 청군이 진짜로 동학군을 진압하러 온 것에 비해, 일본군은 아예 한양을 점령하려는 의도였다. 그렇지 않고서는 전라도에 있는 동학군을 진압하기 위해 한양 근처로 상륙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.] 이에 놀란 조정은 다급히 농민군과 화약을 맺어 청군과 일본군이 모두 물러가게 하려 했다. 톈진 조약에 의거하면 조선의 변란이 진정될 때 양국 모두 즉시 병력을 철수하여야 하며 잔류하지 못한다는 조항이 있었기 때문이다. 동학군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는데, 신식무기로 무장한 경군(京軍)과의 전투에서 피해를 입었을 뿐더러[* 경군으론 무리였다고 여긴 조정의 걱정과 달리 이 무렵에는 경군이 승기를 잡고 있었다.] 동학군의 주력인 농민들에게 농번기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